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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과 높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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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반말과 높임말의 구분입니다. 수업이나 책을 통해 배우더라도 실생활 속에서는 높임말과 반말을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외국 학생들은 종종 혼란을 겪습니다. 한국어에서 이렇게 반말과 높임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뭘까요? 윗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유유서는 조선 시대의 주요한 사회 질서 중 하나였지만, 기록을 살펴 보면 1년 차이에도 선후배를 깍듯하게 따지는 오늘날에 비하면 훨씬 유연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터울이면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다산 정약용은 <죽란시사첩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위로 아홉 살과 아래로 아홉 살이면 우리가 친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성과 한음도 다섯 살 터울이었습니다. 정몽주와 정도전도 다섯 살 차이 친구였고, 송시열과 윤휴도 10살 차이였지만 서로 격의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 선생은 장가를 일찍 가서 큰아들 홍기문과 18살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홍명희의 친구들이 홍기문과도 말을 놓고 지내서 부자지간에도 다 친구들이었다고 합니다.

한두 살 차이로 형동생을 따지고 반말과 높임말에 날을 곤두세우는 것은 군부독재 시절의 군사 문화가 사회에 스며든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동갑이면 태어난 달과 일까지 따지면서 위아래를 가르려는 것은 군대에서 선임과 후임을 따지려 드는 문화가 사회에 고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7살 정도 차이는 무시하고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를 삼는 문화가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물론 한국어를 사용했지요. 그러니 “한국어에 반말-높임말이 있는 건 상하관계가 경직된 사회이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한다면 이는 앞뒤가 안 맞습니다.

생선 이름 '치'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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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이름 뒤에는 흔히 ‘어’나 ‘치’라는 말이 붙습니다. 과연 어떤 생선에 ‘어’를 붙이고 어떤 생선에 ‘치’를 붙이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어’ 자를 붙이는 생선은 비늘이 있고, ‘치’ 자를 붙이는 생선은 비늘이 없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어’ 자를 붙인 생선들이 더 고급으로 여겨졌고 양반들이 즐겨 먹었으며 ‘치’ 자를 붙인 생선들은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부가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지금은 흔히 ‘치’ 자를 붙여 사용하지만 한자어로는 ‘어’자를 붙이기도 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갈치(도어:刀魚), 넙치(비목어:比目魚), 멸치(약어, 魚弱 魚)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 자를 붙이지만 비늘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 문어, 고등어가 있지요.

우리가 한자어라고 생각하는 생선 이름 중에는 더러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붕어와 잉어, 숭어는 ‘붕’과 ‘잉’과 ‘숭’을 한자로 쓸 수 없습니다. 이들은 ‘부어’, ‘이어’, ‘수어’라는 한자어 이름이 변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24절기는 음력? 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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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는 매년 같은 날짜에 돌아옵니다. 이를 통해 24절기가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렇게 생각하면 좀 혼란스러워집니다. 한국에서 태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6년 1월 1일(양력입니다)에 고종이 칙령을 선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럼 그 전에는 24절기가 없었던 걸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음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력이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지요. 달의 모양은 대략 30일을 주기로 바뀝니다. 반면 태양력의 주기는 365일이고 계절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요컨대 1년 동안의 변화를 추적하기에는 음력보다 양력이 유리한 것이지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정확히 말하자면 ‘태음태양력’입니다. 음력을 바탕으로 하되 양력의 요소를 적절히 섞은 것이지요. 따라서 한 달의 주기를 새길 때에는 음력을 사용하고, 1년 단위의 변화를 새길 때에는 양력을 활용했습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종이 태양력을 사용하기로 발표하기 전에도 선조들에게는 태양력의 개념이 있었고 이를 24절기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태양력을 사용하는 우리의 달력에서는 해마다 24절기가 고정되어 있고, 태음력을 사용하는 선조들에게는 해마다 24절기의 날짜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하철에 탄 사람은 멈춰 있어도 바깥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는 이치입니다.

옛 건물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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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물들에는 다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요. 그 이름의 마지막 글자는 건물의 격이나 크기, 용도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격과 규모에 따라 ‘전-당-합-각-재-헌-루-정’의 순서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는 그 마지막 글자들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전(殿) : 여러 건물들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며 주로 의전행사나 공식업무를 하는 공간입니다.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의 혼례식 등이 이곳에서 열립니다. ‘전하’나 ‘중전’처럼 왕과 왕비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사용됩니다. 왕이 아닌 일반인들은 절대 건물 이름에 ‘전’자를 붙일 수 없습니다.

예) 근정전, 인정전, 교태전, 대웅전 등

2. 당(堂) : 전(殿)보다 아래 등급의 건물입니다. 공식 행사보다는 주로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왕과 신하가 만나 국정을 논하고, 의식을 갖춰 외부 손님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또는 개인의 공부를 위한 공간입니다.

예) 사임당, 윤지당, 여유당 등

3. 합(閤) : 대체로 전(殿)에 부속되어 있는 건물이지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독립되어 있습니다.

예) 재수합 등

4. 각(閣) : 규모가 전(殿)이나 당(堂)보다 작고 모양새도 비교적 단출합니다. 업무나 주거보다는 각종 물품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 규장각, 보신각 등

5. 재(齋) : 주거용 공간인데 주로 주인이 따로 떨어져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독립된 건물입니다. 따라서 규모도 작은 편이고, 학업이나 사색 또는 독서가 이루어졌습니다. 궁궐에서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대군이나 공주, 또는 후궁의 집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 낙선재, 집옥재 등

6. 헌(軒) : 일상 주거공간이라기보다는 공무적 기능을 위해 주로 활용됩니다. 대청마루가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예) 소대헌, 난설헌, 동헌 등

7.루(樓) : 온돌이 아니라 지면에서 높이 위로 떨어진 마루로 되어있는 건물입니다. 주요 건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작은 정자처럼 독립 건물로 지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정자와는 달리 일상 생활 공간과 근접해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예) 주합루, 경회루 등

8. 정(亭) : 경관이 좋은 곳에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사용하는 작은 집입니다. 지붕모양이 사각형 외에 육각형, 팔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으며 부채꼴 같은 특별한 형태도 있습니다.

예) 부용정, 향원정, 팔각정 등

도자기 이름을 붙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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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청자상감모란당초문표형주자(국보 116호)가 있는데요. 이런 긴 이름을 보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도자기들의 이름이 어떻게 붙는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청자상감모란당초문표형주자는 의미 단위로 끊어 읽으면 ‘청자/상감/모란당초문/표형/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자’는 색깔, ‘상감’은 제작 기법, ‘모란당초문’은 무늬, ‘표형’은 형태, ‘주자’는 용도를 가리킵니다. 즉, ‘상감 기법으로 만들어 겉에 모란 넝쿨 무늬를 넣은 표주박 형태의 청색 주전자’라고 풀어 말할 수 있지요.

결국, 도자기의 이름은 색깔+기법+무늬+형태+용도로 정해지는 셈입니다.

색깔에는 청자, 백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등이 있습니다. 기법으로는 상감, 음각, 양각, 투각, 철회 등이 있습니다. 무늬는 매화, 대나무, 모란, 연꽃, 물고기, 구름, 학 등이 있지요. 형태는 오이, 참외, 거북이, 표주박 등이 있고, 용도는 항아리, 주전자, 병, 잔, 접시, 연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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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색깔+기법+무늬+형태+용도를 다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물 1437호는 백자대호라고 합니다. 소박한 생김새와 완만한 곡선미가 아주 아름다운 도자기지요.

막걸리와 동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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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동동주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서로 제법 비슷하기도 하니까요.

막걸리와 동동주는 모두 찹쌀과 멥쌀 등의 곡물을 찐 후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서 만듭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생기는데요. 동동주는 발효된 술의 윗부분을 떠내는 술입니다. 따라서 밥알이 ‘동동’ 떠있고 비교적 맑아서 청주에 가깝습니다. 밥알이 떠있는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부의주(浮蟻酒: 개미술)라고도 합니다.

막걸리는 술지게미만 걸러내고 물을 섞어 마시는 술입니다. 막걸리의 ‘막’은 술을 걸러내는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빨리 만들어지는 술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빚어 저녁에 먹는다고도 하지요. 물을 약 80% 정도 섞기 때문에 도수가 대체로 10% 아래입니다.

설렁탕과 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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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에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입니다. 그런데 더러 이 소설 속의 김 첨지를 생각할 때 ‘아픈 부인을 호강시켜 주려고 동분서주하는 남편’으로 기억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설렁탕이 귀한 음식이었다면 소설의 맛이 훨씬 덜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별거 아닌 밥 한 끼조차 엄두를 못 내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겠지요. 실제로 일제 시대에 설렁탕은 서울에서는 흔하디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가격이 제법 올랐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뭔가 이름을 달리 해서 고급스럽게 보일 필요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이름이 ‘곰탕’입니다. 애초 설렁탕의 한자 표기인 ‘공탕(空湯)’에서 왔다고도 하고, ‘푹 고아서 만들었다’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곰탕과 설렁탕은 사실 물에 소를 넣고 끓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고, 다만 음식의 ‘격’만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설렁탕과 곰탕을 분명히 구별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곰탕은 소의 고기와 내장을 넣어서 끓인 것이며 설렁탕은 고기와 내장 외에 뼈도 넣어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따라서 설렁탕의 국물이 좀더 뽀얗다고도 합니다. 설렁탕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곰탕은 진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이 다르다고도 합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렁탕과 곰탕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떡볶이는 왜 떡볶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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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이름을 잘 보면 조리 방법이나 먹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선구이는 굽는 요리이고 아구찜은 찌는 요리지요. 볶음밥은 밥을 볶는 음식이고 비빔밥은 비벼 먹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떡볶이’는 대체 뭘까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떡볶이는 볶아서 만든 음식이 아니니까요. 사전에서는 ‘볶다’를 ‘음식이나 음식의 재료를 물기가 거의 없거나 적은 상태로 열을 가하여 이리저리 자주 저으면서 익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학생이 “선생님, 떡볶이는 왜 떡볶이예요? 볶은 음식이 아닌데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애초의 떡볶이는 본래 볶는 음식이었습니다. 간장으로 양념하는 ‘궁중떡볶이’가 바로 그것인데요. ‘궁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나 설날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오늘날처럼 흔하디흔한 음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궁중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와 고기를 넣고 간장으로 양념하여 볶는 음식인데 한국전쟁 이후로 시장 바닥에서 둥그런 번철(전을 부치거나 고기 따위를 볶을 때에 쓰는, 솥뚜껑처럼 생긴 무쇠 그릇)에 기름을 두르고 가래떡을 볶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통인시장이나 금천교시장같은 전통시장에 가면 떡’볶이’를 볼 수 있습니다.

본래 떡볶이는 매운 것인데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궁중떡볶이를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맵지 않은 떡볶이가 본래의 떡볶이라는 것도 짚어 둬야겠습니다.

소주는 몽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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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소주 판매량은 약 34억 병 정도라고 합니다. 뭐, 놀랍지요.

얼마 전에 무한도전에서 “소주는 몽골에서 왔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소주와 지금의 소주는 좀 다르거든요. 한자도 달라요. 오늘날의 소주는 “燒酎”입니다. 과거의 소주는 “燒酒”라고 썼지요.

한국에 처음 소주가 전해진 것은 약 13세기, 몽골의 쿠빌라이칸 시대입니다. 당시 몽골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 병력을 보냈는데, 그 몽골 군대를 통해 소주가 전해졌습니다. 몽골의 주둔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도가 소주 명산지인 것도 그런 까닭이었겠지요. 소주의 몽골 이름은 ‘아락’이었는데, 당시 고려에서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몽골에서 마시던 소주는 증류주였습니다. 즉, 일단 술을 만들고 거기에 열을 가해 기체를 만든 후에 냉각시키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주정을 희석시킨 것이지요. 술의 엑기스를 만들고 거기에 물 등을 섞어 만드는 것입니다. 소주가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바뀐 것은 1965년 정부가 정책적으로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면서부터입니다. 물론 아직도 증류식 방식을 고집해서 소주를 만드는 곳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