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한국의 연설문

2001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연설 / 노무현

어느때인가 부터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무엇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무엇을 하겠느냐?” 비젼을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비젼을 생각해봤습니다. 제 마음을 가장 끄는 비젼은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5공 때 내 놨던 정의로운 사회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내 놨던 보통 사람의 시대도 상당히 매력있는 비젼이었습니다. 신한국-세계화-정보화-개혁!! 문민 정부의 비젼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국민의 정부 비젼은 달달 욉니다. 민주주의, 시장 경제, 생산적 복지, 남북 화해, 노사 협력, 지식 기반 사회…

저도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제 가슴은 공허합니다. 그 말을 누가 못하냐?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는 유종근 전북지사가 지으신 유종근의 신국가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뢰-협동이라는 이 사회적 자본을 한국이 제대로 구축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앞으로의 사회에 있어 생산성은 생산 요소 투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가느냐 여기에 달려있다! 이렇게… 써 놨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씌여있어서 정말 반가왔습니다. 문제는 그 사회적 신뢰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꾸어 보지 못했고, 비록 그 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 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 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저는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순간 국민들에게 정계 재편을 제안할 것입니다. 지금의 이 정치 구도로서는 싸움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지역끼리 싸우니까 국회의원들도 국회에 가면 지역끼리 싸워야합니다. 싸우지 않는 국회의원은 자기 고향에서 인기가 떨어집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지역 구도를 해체하고 이념과 정책에 의해서 당을 다시 만들어야 됩니다.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는 이 왜곡된 정치 구도를 털어버리고 국민을 위해서 진정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책에 의해서 당당하게 경쟁하고 인물에 의해서 평가받는 정상적 정치를 만들어가는 정계의 재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의 순리에 맞습니다.

이 정계 개편은 옛날 권력이 앞선 정계 개편과는 달리 뒷방에서 겁주고 돈주고 쑥떡쑥떡하면서 밤중에 야반도주하듯이 보따리 싸 들고 이당 저당으로 도망가는 그와 같은 정계 개편이 아니라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제안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그리고 그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서 지역의 유권자들이 명령하는 대로 국회의원들이 당당히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정정당당한 정계 개편이 될것입니다.

많은 한나라당의원들이 남북대화와 화해를 지지하는데 이회창 총리는 사사건건 남북대화를 반대하는 냉전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을 칠 일입니다. 한날 하루라도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이회창 총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많은 개혁적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명분과 기회가 주어지고 국민의 지지가 모아진다고 하면 왜 움직일 수 없겠습니까? 그날은 이제… 지금 박수하고 조절을 잘 못해가지고…

정계개편 하면서 지방자치 선거 치루고 정계개편 완성하면서 대통령 선거 치루고 2003년 2월 새 정부가 출범할때는 우리 민주당이 여대 국회로서 안정된 정치적토대 위에서 이제 본격적인 개혁을 그리고 본격적인 남북대화를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정당으로 그런 정권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1년 전에도 했고 오늘날도 하고 내년에도 해야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집에 청소하듯이 조금씩 조금씩 해내게 되는 일이라면 저는 모든 것을 총리에게 맡겨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아직 과거의 주먹으로 해결하던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 해소와 조정 문제를 직접 관장해야합니다. 행정 개혁과 제정 개혁이라는 이 중요한 문제 그리고 전략적 사업 과제 이런 문제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나누는 수직적 피라미드가 아니라 수평적 네트워크로서 상호의 토론과 협력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새로운 정치모델을 한번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여러 차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그렇게 선언을 했는데 왜… 아직 그 공식이 아니라고 보는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공식 선언하냐고 자꾸 묻길래 공식한 공식이 어딨냐고 했더니, 공식으로 해야 신문에 써 준대요. 그래서 오늘 제 오늘의 이 얘기를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서는 공식선언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 김대중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 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 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 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 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 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 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 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 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 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 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 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 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 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 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 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 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 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 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 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 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 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 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 체결하 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 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 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 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 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 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 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 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 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 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 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 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 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 ,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 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 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 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 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 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 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 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 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 ·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 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 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 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 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 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 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 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 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 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 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 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 .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 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 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 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 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 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 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 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 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 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 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 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 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 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 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 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 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 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 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 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 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 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 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 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 노회찬.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쯤 지나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무렵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어쩌다 누가 결근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 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